풍요로운데 왜 이렇게 메마를까?

풍요와 편리함 속에서 잃어버린 영적 절박함을 되찾고, 진정한 믿음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여정을 함께 시작해보겠습니다.

풍요로움이 가져온 영적 가뭄

이상하게도 우리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질수록 영적으로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새벽마다 눈물로 기도하던 분들이 이제는 스마트폰 알림에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교회에서도 설교 중에 웃음소리는 자주 들리지만, 회개의 눈물을 보기는 어려워졌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현대 교회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가벼워졌습니다. 강단은 농담과 만담으로 가득하고, 성도들은 웃기는 이야기에는 열광하지만 생명의 진리 앞에서는 졸음이 쏟아집니다. 베스트셀러 기독교 서적들을 보면 성공과 번영의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어거스틴의 ‘참회록’이나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같은 고전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영적 위기입니다. 핍박이나 가난이 문제가 아니라, 풍요로움이 가져다준 나태함과 안일함이 더 큰 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잃어버린 세 가지 소중한 가치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살펴보면, 먼저 순교의 피가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편안하게 예수를 믿고 있습니다. 주일날 교회에 가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교회 주변에는 주차장까지 마련되어 있습니다. 목사라는 직분도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위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믿는 것이 불법이 되고 핍박의 대상이 된다면, 과연 우리가 지금처럼 주일마다 교회에 나올 수 있을까요? 여호와의 증인들은 잘못된 교리에 빠져있지만, 그들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군대에서 3년간 영창생활을 감수하고 사회적 낙인을 받으면서도 믿음을 지킵니다. 우리는 참된 복음을 가졌으면서도 피 흘리는 헌신이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입니다.

둘째로 주님을 위해 흘리는 땀이 사라졌습니다. 교인은 많은데 일꾼이 없습니다. 수천 명이 모이는 대형교회조차 청소를 용역업체에 맡기고, 야간 경비를 고용해야 합니다. 주방봉사를 할 사람이 없어서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하는데, 그 분들은 월급을 받는 대신 예배를 드리지 못합니다. 우리는 누리기만 하고 땀 흘리려 하지 않습니다.

셋째로 애통의 눈물이 마른 시대가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피 묻은 복음 대신 번영과 성공, 인본주의적 신앙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성도들은 부담 없는 설교를 찾아 즐기고, 목사들은 부담 없는 설교를 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아파하고 계실 때 우리는 웃고 있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의 기도제목

더욱 놀라운 사실은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이 한국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중국에서 만난 탈북자의 집에는 ‘한국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이 붙어있었습니다. 자신을 위한 기도는 하나도 없고, 모두 한국 교회의 물질주의, 타락한 목회자들, 변화되지 않는 성도들을 위한 염려와 기도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북한 지하교회를 위해 기도한다고 하지만, 정작 그들이 우리를 위해 더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모든 것을 가졌으면서도 가짜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이 남한 교회에 와서 가장 놀라는 것은 감격이 없는 예배, 성령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은 찬양과 기도라고 합니다.

살리는 근심의 회복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은 ‘살리는 근심’에 대해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지만,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살리는 근심입니다. 애통함과 절박함, 간절함과 절실함으로 주님을 찾는 마음입니다. 이 시대에는 이런 영적 감성이 사라졌습니다. 모든 것이 가벼워졌고, 진지함이 없어졌습니다.

예수님도 당시 세대를 향해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해도 울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진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옥 간다고 해도 울지 않고, 그렇게 믿으면 큰일 난다고 해도 가슴을 찢지 않습니다.

마땅히 생각할 것 이상을 품지 말라

로마서 12장 3절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사람이 시험에 드는 이유는 욕심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분량이 있는데, 그 분량을 넘어서는 것을 원할 때 시험이 옵니다. 우리는 정직하게 자신을 평가해야 합니다. 못하는 것은 못하는 것이고,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떠난 이유도, 사게오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똑같은 부자였지만 사게오에게는 절박함과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뽕나무에 올라갈 만큼 간절했던 것입니다.

현실적인 회복의 길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영적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먼저 부족할 때 기도하지 말고 넉넉할 때 기도하십시오. 위기가 닥쳐서 기도하는 것은 늦습니다. 평안할 때 금식하고, 아무런 위기가 없을 때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십시오. 예방하는 의사가 최고라는 중국의 편작 이야기처럼, 영적으로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둘째로 감사를 회복하십시오. 욕심이 있으니까 감사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아내에 대해, 남편에 대해, 자녀들에 대해 감사해보셨습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받은 복을 세어보면 셀 수도 없을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아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받지 않으면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이 겸손함을 잃어버리면 자기 우상화에 빠지게 됩니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변화

지금 이 순간부터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으십시오. 하루에 한 번이라도 아무 일이 없는데도 하나님 앞에 애통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보십시오. 세상의 가벼움을 거부하고 생명의 무게를 느끼십시오.

우리에게는 사람을 살리는 놀라운 사명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여 지옥에서 천국으로 영혼을 건져내는 일보다 더 위대한 일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생명을 걸고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속상함의 상태가 하루를 넘기지 않도록 하고, 분노한 상태를 오래 끌지 마십시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영적 침체는 이런 작은 것들부터 시작됩니다.

마지막으로 천국과 지옥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마십시오.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하신 바요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준비되셨습니까?

순교의 피와 수고의 땀과 애통의 눈물을 회복하십시오. 그것이 천국에서 영광이 될 것입니다. 쉬운 예수 믿기를 포기하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진짜 믿음을 준비하십시오. 기름잔을 준비하여 날마다 깨어 기도하는 삶이 바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참된 신앙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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