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신을 믿게 되었을까? 이 질문은 수천 년 동안 철학자와 종교학자들을 괴롭혀온 근본적인 물음이다. 그런데 최근 뇌과학의 발전으로 이 오래된 미스터리에 새로운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정재승 교수가 참여한 EBS 다큐멘터리는 우리에게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신은 인간이 창조한 것일까?
죽음 앞에서 태어난 신의 개념
갠지스 강가에서 하루종일 타오르는 화장터의 불꽃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죽음 너머의 세계를 꿈꾼다. 육체는 사라져도 영혼은 영원하다는 믿음이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뇌과학자들은 이러한 종교적 믿음이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생각해보자.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다. 이 무거운 깨달음 앞에서 인간의 뇌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바로 ‘영원함’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이다. 천국, 극락, 환생 같은 믿음들이 모두 이 죽음에 대한 불안에서 태어났다는 게 과학자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이런 초자연적 경험들이 정말 실재할까? 1987년 멜린다의 유령으로 유명해진 집을 과학적으로 조사한 결과는 놀라웠다. 사람들이 본 환영은 사실 방문객 자동차에 비친 손전등 불빛이었던 것이다. 많은 초자연적 현상들이 이처럼 뇌의 착각이나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뇌 속에 숨겨진 신의 자리
그렇다면 신을 믿는 마음은 뇌의 어디에서 나올까? 마이클 퍼싱어 교수는 흥미로운 실험을 설계했다. 뇌의 측두엽을 자극하는 특별한 장치를 사용한 것이다. 실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정재승 교수를 포함한 많은 참가자들이 측두엽 자극을 받자 “누군가 옆에서 속삭이는 것 같다”, “신의 음성을 들었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는 마치 컴퓨터의 특정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것과 같았다. 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면 종교적 체험이 재현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학자가 이 견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펜실바니아 대학의 앤드류 뉴버그 교수는 500명의 종교 수행자를 연구한 결과, 종교적 경험은 측두엽 하나가 아니라 뇌 전체의 복합적인 작용이라고 반박했다.
어떤 관점이 맞든, 한 가지는 분명하다. 종교적 믿음과 신앙은 우리 뇌의 자연스러운 기능이라는 것이다. 이는 종교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본성의 깊은 부분을 이해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생존본능이 만들어낸 겁쟁이 뇌
정재승 교수는 종교의 기원을 생존본능에서 찾는다. 수렵채집 시대의 인간은 언제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작은 소리에도 맹수의 존재를 의심하고, 이상한 징조에서도 재앙의 전조를 읽어내야 했다. 이런 과정에서 인간은 ‘겁쟁이 뇌’를 발달시켰다는 것이다.
바구니 앞에서 피리를 부는 노인을 본 소년이 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도망치는 것처럼, 우리 조상들은 항상 최악의 시나리오를 대비했다. 설사 그 판단이 틀릴 수도 있지만, 한 번의 실수가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환경에서는 과도한 경계심이 오히려 생존에 유리했다.
교양 과학지 스켑틱의 발행인 마이클 셰머는 여기에 인간의 패턴 인식 능력을 더한다. 구름 모양에서 동물을 찾아내고, 나무 그림자에서 사람 얼굴을 보는 것처럼, 인간은 무질서한 자연 현상에서도 의도와 질서를 찾으려 한다. 이런 능력이 결국 자연을 주관하는 초자연적 존재, 즉 신의 개념을 탄생시켰다는 분석이다.
인간을 닮은 신의 모습
그렇다면 인간이 만들어낸 신은 어떤 모습일까? 인지과학자들이 24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사람들에게 신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고 기억하는 내용을 분석한 것이다.
놀랍게도 사람들이 기억하는 신은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처럼 일을 순차적으로 처리하고, 화를 내기도 하며, 인간을 불쌍히 여기는 감정적인 존재였다. 힌두교 칼리 여신의 팔이 여러 개인 이유를 “많은 사람을 도우려면 팔이 많아야 한다”고 해석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신을 의인화해서 이해한다.
이는 우리 뇌가 복잡한 개념을 이해할 때 사용하는 기본적인 전략이다. 낯선 것을 익숙한 것으로 바꿔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결국 신도 인간이 가장 잘 아는 존재인 ‘인간’의 모습을 빌려 만들어진 셈이다.
집단 의식이 주는 강력한 힘
종교가 개인을 넘어 사회적 현상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리셔스의 극단적인 종교 의식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가 그 답을 제시한다. 신을 경배하기 위해 온몸에 바늘을 꽂는 의식에 참여한 사람들의 심박수와 호흡이 완전히 동기화된 것이다.
스페인의 700도 나무 재 위를 뛰는 종교 의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뛰는 사람, 업히는 사람, 지켜보는 사람 모두의 심박수가 일치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집단적 종교 행위를 통해 사람들은 말 그대로 ‘한 마음’이 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2억 명이 50일 동안 힌두교 축제를 위해 알라하바드로 향하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그 엄청난 인파 속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일체감과 소속감은 어떤 과학적 분석으로도 완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강력한 힘을 가진다.
과학이 줄 수 없는 위로의 힘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과학이 종교의 메커니즘을 밝혀낸다고 해서 종교가 무의미해지는 걸까? 오히려 반대일 수도 있다. 과학은 우리에게 명확한 지식을 주지만, 가슴 떨리는 감동이나 절대적인 위로는 주지 못한다.
신을 받아들인 애기무당의 이야기를 보자. 몸도 아프고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던 그녀는 “살고 싶어서” 신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내림굿이 끝난 후 그녀가 보여준 활짝 웃는 얼굴과 “이제야 속이 편해졌다”는 말에는 과학적 분석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치유의 힘이 담겨 있다.
반면 극단적 종교 공동체를 떠난 페사후 아이젠의 경험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종교가 주는 소속감을 그리워하면서도, 그것이 규율에 순종할 때만 주어지는 조건부 사랑이었다고 털어놓는다. 현재 그는 예술과 문화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현대 사회에서 종교의 역할
과학이 발달할수록 세상은 오히려 더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해 보인다. 양자역학은 우리에게 확률의 세계를 보여주고, 뇌과학은 자유의지조차 착각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불확실성 앞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절대적인 무언가를 갈망한다.
현대의 종교는 전통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명상과 마음챙김, 요가와 같은 영성 수행이 대중화되고, 과학과 종교를 결합하려는 시도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는 종교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게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종교든 과학이든 인간의 삶을 더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드는 도구라는 점이다. 종교적 믿음이 뇌의 작용이라고 해서 그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랑도 호르몬의 작용이지만 그렇다고 사랑이 덜 소중한 것은 아니듯 말이다.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영성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먼저 자신의 믿음 체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종교를 믿든 믿지 않든, 우리 모두는 어떤 형태로든 초월적인 것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매일 5분씩이라도 고요한 시간을 가져보자. 명상이든 기도든 산책이든 상관없다. 일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작은 실천이 우리 뇌의 종교적 회로를 자연스럽게 활성화시킬 수 있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감을 느낄 수 있는 활동에 참여해보자. 종교 공동체가 아니더라도 봉사활동, 동호회, 스터디 그룹 등을 통해 소속감과 일체감을 경험할 수 있다. 인간은 혼자서는 완전해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과학적 지식과 영적 경험을 대립시키지 말자. 둘 다 인간 경험의 소중한 부분이다. 뇌과학이 밝혀낸 종교의 메커니즘은 종교를 부정하는 근거가 아니라, 인간 본성을 더 깊이 이해하는 통찰이 될 수 있다. 오늘부터 열린 마음으로 과학과 영성 모두를 받아들이며, 더 풍요로운 삶의 여정을 시작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