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친구가 알려준 ‘실수의 진실’ – 사랑에 빠져서가 아닐까?

실패를 두려워하는 한국 사회에서 남미의 로맨틱한 마음가짐이 주는 치유의 메시지와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삶의 여유로움을 탐구합니다

나는 어느 날 에콰도르 친구와 함께 일을 하다가 이상하게 계속 실수를 연발하는 날이 있었다. 평소 그런 사람이 아닌데 하루 종일 그 친구에게만 실수를 하게 되어 정말 미안했다. “내가 평소에 이렇지 않은데 오늘따라 너한테 왜 이러지 모르겠다”고 사과했을 때, 그 친구가 건넨 한 마디가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괜찮아. 에콰도르에서는 사람이 자꾸 실수하면 사랑에 빠져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해.”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얼마나 서로를 긴장시키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그 친구의 말을 별 생각 없이 SNS에 올렸는데, 놀랍게도 2만 개가 넘는 리트윗이 달렸다. 수십만 명이 그 작은 이야기에 감동받았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목말라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한국 사람들은 너무 착하다. 아니, 어쩌면 너무 겁이 많다고 해야 할까. 개개인도, 공동체도, 나라도 실패를 너무 무서워한다. 실패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오히려 우리를 실패하게 만들고 있다. 스페인어를 배우면서 가장 좋았던 것 중 하나는 긍정적인 어휘가 정말 다양하다는 점이었다. “너무 좋다”, “인상적이다”, “멋지다”, “훌륭하다”, “이쁘다” – 이런 표현들이 일상 대화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내가 남미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배운 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 아르헨티나 친구들에게 “너희 괜찮냐? 물가가 장난 아닌데”라고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아르헨티나는 늘 위기였어”였다. 그들은 그 위기조차 즐기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때는 인플레이션이 심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내가 갖고 있는 현금이 다 똥값이 될 게 뻔하니까 집을 다 팔고 메시나 보자”는 마인드로 카타르까지 날아간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그들의 현재를 사는 능력에 감탄했다.

쿠바에서의 경험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강도 때문에 곤란해하던 나를 도와준 한 흑인 형이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지붕이 없는 빈민가의 집이었지만, 그곳 사람들은 나를 정말 환대해줬다. 가죽이 다 벗겨진 공으로 축구를 하는 아이들, 즉석에서 봉고를 연주해주는 어른들, 가족사진 한 장 없다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아저씨. 그들의 한 달 월급은 한화로 1-2만 원에 불과했지만, 그 어떤 사람들보다 행복해 보였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그들을 보며 깨달은 것은 행복이 물질적 풍요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베풀 준비가 되어 있고, 삶을 즐길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그토록 힘든 상황에서도 유쾌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나는 집에 돌아와 그들에게 축구공과 편지를 보냈다. 배송비만 10만 원이 넘게 들었지만, 그것은 내가 받은 따뜻함에 대한 작은 보답이었다.

우리나라는 남미에서 로맨스를 배워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로맨스는 단순한 연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삶을 대하는 낭만적 태도, 현재를 사랑하는 마음, 타인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여유로움을 말한다. 파블로 네루다의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읽으며 교수님이 하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연애 중이면 앞의 20편만 읽고, 헤어지면 그때 마지막 한 편을 읽어라.” 그런 세심한 배려와 감성이 우리에게는 부족하다.

스페인어를 공부하면서 깨달은 것은 언어가 사고의 집이라는 사실이다. 언어를 바꾸면 정말로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다양한 언어를 배우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세상을 보는 관점이 넓어진다는 점이다. 한국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한 감정들을 다른 언어로는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 때가 있다.

문학을 공부하며 배운 것은 답이 없는 것을 탐구하는 즐거움이었다. 대학원은 학생이 아닌 직업인의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는 곳이다. 태평양에 던져져서 새로운 영법을 스스로 체득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는 통찰과 성장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다.

음악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자신이 떡상형인지 대기만성형인지를 파악하는 것의 중요성이다. 나는 대기만성형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나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말 좋은 작업을 하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고,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도 아까워하지 않게 되었다.

부모님을 설득하려 하지 마라. 납득시키고 체념시켜라. 말과 논리로 이기려 하지 말고, 자신의 가치를 집 밖에서 발견하라. 이것이 내가 후배들에게 주고 싶은 조언이다. 기회를 멀리서 찾지 말고 주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라. 결국 문화예술계는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멋진 이벤트를 만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또 보고 싶은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악인 한 명을 피하는 것이 100명을 만나는 것보다 중요하지만, 괜찮은 사람이라면 필드가 다르다고 해서 급을 나누지 말고 모두에게 친절하라.

오늘 하루,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 “오늘 참 멋지네요”, “고생하셨어요”,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어요” 같은 간단한 말들이 누군가의 하루를 바꿀 수 있다. 에콰도르 친구가 내게 건넨 그 한마디처럼 말이다. 실수를 했을 때 “사랑에 빠져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해보자. 그런 여유로움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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