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치유자로 살아본 30일, 내 삶은 이렇게 바뀌었다

세상이 목마르게 찾는 기독교의 정체성과 현대 신앙인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 깊이 탐구합니다. 외형적 종교 활동을 넘어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타인을 섬기는 상처받은 치유자로서의 삶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현대 사회가 종교에 대해 갖는 회의적 시선은 어디서 출발할까요? 인도의 성인 마하트마 간디가 남긴 “그리스도는 좋지만 크리스천들은 싫다”는 말처럼, 오늘날 세상은 기독교의 본질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기독교인이 되어야 할까요?

최근 한 목사가 인공지능에게 던진 질문이 흥미로운 답을 이끌어냈습니다. “세상이 기대하고 기다리는 기독교는 어떤 기독교인가?”라는 물음에 AI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세상이 기대하는 것은 예수를 닮은 교회입니다.” 이 답변은 단순하지만 오늘날 기독교가 직면한 핵심 과제를 정확히 짚어냅니다.

겉모습만 치장하는 위선적 신앙의 위험성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보여준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경종을 울립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보다 사람의 전통을 더 중시했고,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자신들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회칠한 무덤”에 비유하셨습니다. 겉은 아름답게 치장되어 있지만 속은 썩어 있다는 뜻입니다.

현대의 기독교인들도 이런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매주 교회에 나가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외형적 신앙 생활을 하면서도 정작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뿌리내리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종교 활동을 하면서도 내면의 변화나 성장 없이 지내는 것은 바리새인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한 목사의 경험담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뉴욕 거리에서 노숙자 여성을 도우려던 그는 상대방이 자신이 주문한 베이글 대신 달걀 샐러드를 요청하자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선의로 도우려 했는데 상대방이 까다롭게 구는 것 같아 짜증이 났던 것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그 여성이 치아 문제로 딱딱한 음식을 먹기 어렵다는 사연을 듣고 자신의 편견을 깨달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얼마나 쉽게 선입견의 틀에 갇혀 타인을 판단하는지 보여줍니다. 노숙자는 시키는 대로 먹어야 하고, 도움을 받는 사람은 감사히 받기만 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의 회복이 첫 번째 과제

진정한 기독교의 회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수님 말씀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는 우리가 스스로 깨달아 도달하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시는 것을 받아들이는 계시의 종교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비유를 이해하지 못했을 때 직접 물어본 것처럼, 우리도 말씀 앞에서 겸손한 자세로 질문해야 합니다. “주님,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제가 어떻게 반응하기를 원하십니까?” 설교를 듣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내 삶에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 주님께 묻는 것이 중요합니다.

골로새서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고, 그분을 기초로 인생을 건설하며,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이 굳게 서라고 권면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건설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작년과 올해의 인격이 같다면 성장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 정신의 회복이 두 번째 과제

예수님은 모든 계명을 두 가지로 요약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정신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정치적 갈등과 분열로 상처받고 있습니다.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한쪽은 깊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교회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중간에 막힌 담을 허무신 것처럼, 우리도 갈라진 마음들 사이의 벽을 허무는 일에 참여해야 합니다.

상처받은 치유자로서의 소명

세상에 상처받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상처가 적은 사람이 상처가 많은 사람을 도와주는 것만이 치유의 방식은 아닙니다. 더 깊은 상처를 받은 사람도 예수님의 치유를 경험하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상처받은 치유자”의 개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받으신 상처를 통해 우리를 치유하신 것처럼, 우리의 상처도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경험한 아픔과 눈물이 누군가에게는 위로와 치유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한 상담 프로그램에서 전문가가 상처 많은 한 여성에게 “당신은 상처받은 치유자입니다”라고 말한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이는 원래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기독교 용어인데, 모든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오늘부터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

먼저 매일 말씀 묵상 시간을 가져보세요.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지 귀 기울이는 시간입니다. 설교를 듣고 난 후에는 “주님, 이 말씀을 어떻게 실천하기를 원하십니까?”라고 질문해보세요.

둘째,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습관을 기르세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 사람만의 사정이나 아픔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이해하려 노력해보세요.

셋째, 내 상처를 하나님께 맡기고 치유받는 시간을 가지세요. 새벽 기도나 개인 기도 시간에 솔직하게 내 아픔을 하나님께 털어놓으세요. 하나님의 위로와 치유를 경험할 때, 우리도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작은 것부터 섬기는 마음을 실천해보세요. 가족, 직장 동료, 이웃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판단보다는 이해로, 정죄보다는 용서로 다가가는 것이 세상이 기다리는 기독교의 모습입니다.

세상이 목마르게 기다리는 기독교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려는 진실한 마음과 상처받은 이웃을 치유하려는 따뜻한 손길이면 충분합니다. 오늘부터 상처받은 치유자로서의 삶을 시작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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